‘스투디움’과 ‘푼크툼’. 전자가 ‘나는 좋아한다’와 연결된다면, 후자는 ‘나는 사랑한다’와 연결되면서 둘은 강밀도와 질적 차이를 나타낸다. 전자가 사진에서 교양적으로 정보, 재현, 놀라움, 부러움의 감정을 일으킨다면 후자는 나를 정신적으로 찌르고, 상처를 주며, 타박상을 입힌다. 사진에서 감정을 촉발시키는 이런 두 특징적 요소/개념들에 연극과 접근되는 죽음의 직관이 덧붙여진다...결국 푼크툼은 스투디움적인 포르노의 욕망을 넘어선 에로티시즘의 욕망이 위치하는 차원에 자리잡는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와 같은 욕망의 차원에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진 사진론이 결국 피상적이라고 결론짓고 ‘취소의 변’을 늘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