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가 죽고 왕위는 아들 에드워드 6세에게 넘어갑니다. 역사 속에 이 왕의 시대는 종교개혁에 아주 우호적인 정책을 폈던 시대...다만...고작 5년...유럽 대륙에서 핍박 받던 종교개혁자들은 너도 나도 잉글랜드로 건너옵니다...사제들도 혼인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관점에 변화....”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사제들의 결혼은 그래서 종교개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이런 선구자들의 활동과 희생 속에서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도 점차 개혁파의 입장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시행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칼뱅의 신학적 입장이 꽤 많이 반영된 여러 가지 개혁 작업이 이루어지고, 예배나 각종 교회 제도 등에 있어서도 유럽대륙의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급속도로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잉글랜드가 명실공히 종교개혁 국가의 반열에 들려던 순간...갑자기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합니다.(1553년) 그 바람에 신나게 달리던 종교개혁은 ‘덜컥!’하고 급브레이크가 걸리고 맙니다. 에드워드 6세의 뒤를 이어, 저 유명한 ‘블러디 메리’가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