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의회가 소집된 지 일주일 뒤...종교개혁자들이 내려왔습니다...분쟁의 핵심이 종교문제였으니, 평화의 핵심도 종교문제였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찰스 1세가 그 이상한 종교정책을 포기하는 것이었으며, 적어도 스코틀랜드에서만큼은 장로교회 정치제도가 보장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바란다면, 이웃나라 잉글랜드도 종교개혁의 흐름을 스코틀랜드 수준으로 따라왔으면 했던 겁니다. 그게 되려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동일한 교회정치와 예배형식을 가지면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제출한 <우리들의 요구>에는 전쟁보상금이니 뭐니 이런 따위가 아니라, ‘교회의 일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교회가 ‘하나의 신앙고백, 교리문답서, 예배모범서 그리고 동일한 형태의 교회조직’을 소유하자는 것이었습니다...바로, 수년 뒤에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저 목록과 일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