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영향을 받아 자유주의가 발현했고,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세상의 풍조들은 신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전을 주었다. 그런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멸시하는 풍조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풍조에 휩쓸렸다. 이 때 슐라이어마허는 이런 풍조 앞에 종교의 본질을 논함으로서 도전받는 기독교를 방어하고자 했다. 그는 먼저 종교는 형이상학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며 또 그것들에 종속되지도 않은 종교라는 독특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그의 잘못된 신학과 사상은 훗날 자유주의신학을 태동시켰고 이로서 그는 ‘자유주의신학의 아버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는 종교를 우선 직관과 감정의 영역으로 설명하면서 새로운 자유주의신학의 체계를 완성시켰다...역사비평에 근거하여 재해석하는 신학을 출현시켰다. 이후 대부분의 유럽의 신학자들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