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죽을 자리에 있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축복의 자리로 옮겨 놓으시는 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이란 훨씬 더 기묘하고 신비합니다. 길을 가다가 모닥불 속에서 타고 있는 나무를 본 조각가가 “내가 저 나무로 거북선을 조각하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맨 처음 하는 일은 타고 있는 나무를 꺼내서 불부터 끄는 것입니다. 다 타고 난 재로 거북선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먼저 꺼내야 합니다. 꺼낸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꺼냈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나무 자신은 참 신이 날 것입니다. “만세! 나 구원 얻었네. 나는 영벌의 자리에서부터 나왔네. 나는 이제 더 불에 탈 일이 없다네. 이제부터는 저 모닥불에 들어가서 다른 나무를 꺼내어 오리라.” 그러나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확신’ 정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꺼낸 것’은 조각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입니다. ‘꺼낸 것’은 목적을 위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무쪽에서 보면 불탄 것보다 꺼내놓는 게 더 괴롭습니다...꺼냈기 때문에 매일 조각 도구로 파이는 일을 당합니다. 톱으려 켜고, 끌로 홈을 파고, 대패로 밀어내고, 후후 불고, 갈고, 사포로 문지르고..., 이것은 불에 타는 것만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