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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자와 실증주의자는 극단적인 환원주의자다. 자연주의자는 환원주의의 오류를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들의 논증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환원주의적 사고가 복잡한 이유는 환원주의가 부분적으로는 단순성이라는 과학적 이상에서, 부분적으로는 반형이상학적 또는 반종교적 태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는 어떤 대상에게서 그 대상이 지닌 권리와 지위를 박탈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대로 정신은 유기체 내에서 기능한다. 하지만 정신을 뇌와 동일시하면 사실들이 파괴된다. 양심은 사람의 신체가 지닌 유전적, 환경적, 물리적 요소와 많은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모든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양심의 존재와 자율성은 사라지지 않는다...이 지점에서 기독 철학자는 단순성만큼이나 충분성도 과학 탐구에서 중요한 원리라는 점과 환원주의는 단순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실들을 파괴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환원주의가 수많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파괴한 후에야 과학주의는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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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언어는 현상적 언어다...성경의 언어는 대중적일 뿐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것에 국한된다...프랫의 견해...”성경은 평범한 관찰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이론의 언어가 아니라 감각의 언어로 말한다. 성경은 일상의 단어를 사용한다. 성경은 자연 대상을 보이는 대로 기술한다...’뜨다’’지다’’떨어지다’’올라가다’’내려가다’ 등의 단어는 상대적인 개념의 용어이며, 따라서 앞에서 말한 천체의 절대적인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자연현상에 대한 언급을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 용어를 다룰 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대중적 언어 사용에서도 위험한 행위다. 왜냐하면 이론은 종국에는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고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일반성이 부족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재정립과 재진술이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외양 즉 보이는 모습을 기록한 기술은 인간의 감각이 그대로인 한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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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결론적으로 우리가 주목하는 바는 자연적 사물들과 관련된 성경의 언어가 대중적이고 전과학적이며 비주장적이라는 것이다...이 용어들이 그 자체로 오류가 없는 과학적 표현이 되게끔 하지는 않으셨고 성경의 신학적 내용이 결코 위협받게 하지도 않으셨다는 사실이다...쉴즈...”요컨대 성경은 비과학적이기는 하나 반과학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성경이 쓰인 시대에 진리였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도 진리이며 다가올 모든 시대에도 진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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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사물들에 관한 성경의 언어는 비주장적(non-postulational)이다. 이거싱 의미하는 바는 성경은 사물의 실제 속성에 관해 이론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보이는 것들의 가장 내밀한 구성”에 대해서는 침묵...성경은 천문학, 지질학, 물리학, 화학, 동물학, 식물학과 관련하여 어떤 것도 이론화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대중적, 현상적 언어로 처리되며 과학적 가정은 들어 있지 않다...벨 도슨...”성경 어디에서도 자연적 사물들에 대한 확정적 설명을 찾을 수 없다...성경 저자들은 주변에서 실제로 본 것을 기술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않으며, 자신이 본 것을 기술하는 그들의 방법은 참으로 온당하여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침이 없다...성경 저자들은 엄격한 자제력을 보이는데, 신적 인도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자연적인 것을 기술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으며 이론적인 설명을 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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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성경의 언어는 성경이 쓰인 시대의 문화를 계시의 매체로 사용한다...하나님이 히브리어로 말하는 예언자들과 헬라어로 말하는 유대인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어느 정도는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지닌 속성의 제한을 받는다. 언어는 문화에서 떼어 낼 수 없다. 언어와 문화는 매우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또한 이 언어들이 뿌리를 둔 문화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우리가 생각하기에 올바른 입장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을 기록한 언어와 그 언어가 수반하는 문화 안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전달되었다는 견해다. 하나님의 계시는 문화를 거치면서 의미와 적실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쉴즈...”히브리인들은...동양의 경전이나 아니면 좀더 예술성을 지닌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듯이 천문학이나 지질학을 왜곡하는 동시대인들의 터무니없는 어리석음을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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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정통주의에는 정교한 과학철학과 생물철학이 부재했다. 과학과 생물학의 큰 문제들은 폭넓은 과학철학의 시각에서 논의해야 하는데 복음주의자는 언제나 지나치게 좁은 관점으로 논쟁에 임했다...정교한 기독교 유신론과 과학철학 없이는 성경과 과학 그리고 신학적 사실과 실증적 사실에 관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복음주의자들은 불연속성에 비중을 너무 많이 둔 나머지 과학이 어떤 연속성을 발견하든 간에, 그것이 마치 악마라도 되는 양,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복음주의는 창조에 관한 제대로 된 철학을 갖지 못한 채, 격렬하게 과학의 발견을 무력화시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문제를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은 지난 세기 싸움에서 패배한 선배들의 전략을 답습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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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창조의 하나님이 구속의 하나님이시고 구속의 하나님이 창조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과학과 복음주의의 조화를 매우 긍정하는 입장을 따르게 된다. 하나님이 자연에서 하시는 말씀과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은 모순될 수 없다. 자연이라는 책과 성경이라는 책의 저자가 동일한 하나님이라면 이 두 권의 책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따라서 과학과 과학자를 대할 때에는 분노나 의심, 비방이 아닌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편협하고 교조적인 자세가 아니라 절제되고 신중하며 열린 자세로 과학을 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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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과학을 진지하게 다루기를 거부하는 신정통주의와 종교적 모더니즘, 그리고 과학을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초정통주의와 대조적으로 지금 우리가 옹호하고자 하는 입장은 기독교 사이에 긍정적인 관계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초정통주의가 과학을 무시하는 것만큼이나 종교적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가 성경을 무시하는 것도 어리석은 태도다. 진리는 과학과 성경, 이 둘을 합해 놓을 때에만 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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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계시의 빛이 필요하다...천태만상으로 존재하는 만물의 모든 정보를 그러모으는 것이 과학의 의도라면 이 정보에 목적과 목적론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신학의 기능이다...신학이 없으면 과학은 단 한 시간의 창조도, 단 한 시간의 완성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한 채 광대한 우주의 체계를 무분별하고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것으로 제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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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영혼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과학자 자신의 성향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그러므로 우리의 목적은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구원자 사이에 가져다 놓곤 하는 쓸데없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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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언어는 고대 팔레스타인과 그리스의 언어다. 이 두 언어를 서로 관련지어 보려면 두 언어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 과학자가 ‘원자’’법칙’’정리’’논리적 구성체’’규정’’휜 공간’ 같은 단어를 사용할 때 이러한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과학철학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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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과학을 통해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손에 넣은 지금 과학자들은 과학으로는 만들 수 없는 도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신학은 이 지점에서 과학에 필요한 도덕적 안전장치를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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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대체로 과학의 과업은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고 신학의 과업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 두 과업과 그 결과들이 조화로운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논지다. 자연에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일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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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영감을 받은 책이므로 하나님의 진리가 문화적인 것 안에 들어 있지만 명백히 드러나 있지는 않다. 문화적인 것 아래 있는 진리는 문화라는 매체의 성격이 아니라 영감의 구속력 있는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문제에서는 성경에서 교훈적, 신학적 성경을 뚜렷이 지닌, 그래서 초문화적 성격을 갖는 구절들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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