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Search
메모
🔥
페이지
칼빈주의가 전체 인간 생활을 바로 하나님 앞에 놓는다면, 그 결과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약한 자든 강한 자든, 멍청한 자든 재능 많은 자든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길잃은 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근거로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으며...서로 동등하다...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다스릴 권위를 주셨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재능을 한 사람에게 주어 부요롭게 하신 것은, 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재능이 덜 한 사람을 섬기고 그 안에서 자신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기 때문이다...노예제와 카스트 제도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사람들 가운데 있는 모든 위계 질서를 반대한다...그래서 칼빈주의는 삶에 대한 민주주의적 해석을 말하고 나라들의 자유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이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피조물로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할 때까지 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Open
🔥🔥🔥
38
1789년이 전환점이었다. “악당을 타도하라”는 볼테르의 미친 외침은 바로 그리스도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외침은 프랑스 혁명을 탄생시킨 가장 깊이 숨어 있는 사상의 표현에 불과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없다”는 또 한 명의 철학자의 광적인 부르짖음과 “하나님도 없고 주인도 없다”는 국민의회의 혐오스러운 표어는 그 당시 인간 해방을 모든 신적 권위로부터의 해방으로 선전했던 신성 모독의 슬로건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 이 혁명을 부르봉 왕조의 독재를 전복하여 하나님의 국가들을 자신의 발등상으로 남용했던 군주들을 심판하는 수단으로 쓰신다 해도, 혁명의 원리는 여전히 철저히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남아 있으며 그 이후 암처럼 퍼져 우리의 기독교 신앙 앞에 굳건하고 일관되게 서 있던 모든 것을 해체하고 손상해 왔다.
Open
🔥🔥
18
현대주의라는 전포괄적인 삶의 체계가 엄청난 힘으로 우리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느껴야 하며, 따라서 역시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힘을 가진 삶의 체계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나는 기독교 원리가 칼빈주의로서 나타나서 우리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고백함혀 지금도 그 생각은 확고하다...현대주의가 침략하고 압도하는 데서 개신교 국가를 유일하게 결정적이고 합법적이고 일관되게 보호하는 칼빈주의, 이것이 나의 주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Open
🔥🔥
20
지난 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에서 그리고 금세기의 독일 철학에서 생긴 주도적인 사상들은 조상의 삶의 체계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체계를 형성한다. 그들(조상)의 투쟁은 하나님의 영광과 순수한 기독교를 위한 것이었다...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현대주의 앞에 그렇게 연약하게 서 있었는가?...그것은 우리가 전선에서 원수를 내쫓을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힘을 우리에게 유일하게 공급할 수 있는, 동일한 통일적 인생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우리는 칼빈주의가 그와 같은 통일된 삶의 체계를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사실을 좀 더 적극적인 증거 없이는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며...전포괄적인 원리 체계라는 확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한다.
Open
🔥🔥
28
칼빈주의...심오한 근본 사상을 취한다...하나님이 피조물 위에 높은 위엄 가운데 계시지만 성령 하나님으로서 피조물과 직접 교제를 맺으신다는 숭고한 사상을 선포한다. 이는 심지어 칼빈주의의 예정 고백의 핵심이며 진수이다. 하나님과 교제가 있지만, 영원부터 하나님의 평화의 경륜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한에서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우리에게 오지 않는 은혜는 없다. 우리의 실존의 순간마다 전체 영적 생활은 하나님 자신 안에 거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였으며, 예정은 인간과 인간을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며...살아계신 하나님과 직접저깅ㄴ 교제를 보장하기 위하여 결단코 유지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에 대한 칼빈주의자의 반대는 무엇보다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교회를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교회는 직분이나 독립적 제도에 있지 않았다. 신자 자신이 믿음으로 전능자와 교제하는 한 교회였다.
Open
🔥🔥
31
“땅을 정복하라”는 낙원의 원래 규례로 자신에게 짐지우신 거룩한 의무로서 이해하기 시작했다...세상으로부터 피하는 수도원의 도피 대신에 세상 안에서 삶의 모든 지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의무가 강조된다...그래서 청교도의 맑은 정신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모든 생활을 다시 정복하는 일로 이어졌으며, 칼빈주의는 로마의 사상을 가진 세상을 맞서려는 새로운 발전에 추진력을 주었다...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반 은혜의 잠재력을 실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Open
🔥🔥
41
“나는 성경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발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생활의 토대를 드러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규례가 사회와 국가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 실존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리스도는 인간 생활과 활동의 모든 부분에서 왕이시라는 것이, 그가 신학자로서든 정치가로서든 정치 지도자로서든 기독교 노동조합 조합장으로든 기독교 교육 후원자로서든 자신의 모든 저술과 연설과 활동에서 줄곧 퍼뜨렸던 생각이었다.
Open
🔥
13
이교는 피조물을 넘어선 하나님의 독립적 존재라는 개념으로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형태에서도 이교는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출발점으로 갖고 있고, 이 해석 덕분에 인간 사회에 대한 완성된 형식을 산출할 능력을 갖는다. 이교는 간단히 말해 이런 중요한 출발점을 갖고 있었기에 전체 인간 생활에 대한 자신의 형식을 가질 수 있었다.
Open
🔥
30
루터의 출발점은 의롭게 하는 믿음이라는 특별 구원론적 원리였고, 반면에 칼빈의 출발점은 그보다 훨씬 더 넓게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일반적 우주론적 원리에 있었다. 이런 결과로 자연스럽게 루터는 이어서 교회를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있는 대표적이며 권위적인 교사로 보았고, 칼빈은 처음으로 바로 신자 안에서 교회를 보았다. 루터는 할 수 있는 대로 여전히 로마교의 성례관과 로마의 의식에 의지했지만, 칼빈은 처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인간으로부터 하나님께로 직접 이어지는 선을 그었다...칼빈주의는 교회 안팎에서 인간 생활의 모든 부분에 그 영향을 끼쳤다.
Open
🔥
32
그러므로 나는, 모든 일반적인 삶의 체계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며 우리에게 이 개념은 칼빈주의 안에 있고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의 직접적 교제라는 칼빈주의 근본 해석 덕택이라고 주장한다.
Open
🔥
34
🔥
37
COUNT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