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Search
메모
🔥
페이지
우리의 신학의 빈곤은 단지 학문의 부족이 아니다. 우리의 신학의 빈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 떨림과 이끌니는 사랑의 경험의 결핍이다. 그런 점에서 존 오웬은 우리에게 진정한 신학함이 경건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이 믿고 사랑하고 기도하고 무엇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추구하여야 한다.
Open
🔥🔥🔥
70
지루할 정도로 반복해서 지적되는 ‘바른 생각’의 중요성은 그의 신학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강조점이다. 왜냐하면 신자의 마음의 모든 미끄러짐은 바로 생각의 이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각 지킴은 곧 신자가 생각하여야 할 바를 생각하고 그리하지 말아야할 바를 의지적으로 떨쳐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존 오웬은 이것이 마음 지킴보다 앞서야 할 경건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잠시 마음의 자유를 위해 생각을 죄에 개방하는 신자는 자유보다 더 큰 구속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더 큰 영혼의 자유를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집중하고 복음의 진리들을 묵상하는 가운데 죄의 속임으로부터 매순간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충실해야 할 신자의 의무이다.
Open
🔥🔥🔥
122
죄를 이기는 성화의 삶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마음을 기울여, 지속적으로 열렬히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죄를 파멸하는 영혼이 직접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Open
🔥🔥🔥
146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주의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내용보다는 오히려 신학방법론 때문이었다. 스콜라주의는 주제들에 대한 깊은 숙고 끝에 신중하고 치열한 논증에 착수하기에 적합한 포괄적인 사상과 논리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논리를 세우고 개념을 정의하며 유사한 것들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분석하며 반론에 답변하는 스콜라주의 학문의 방식은 존 오웬처럼 끝까지 파고들어가기를 좋아하는 경향성의 신학자가 차용하기에 적절한 방법론이었다...스콜라주의는 철학과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기독교 교리의 통일성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수 세기에 걸쳐 고도로 발전해 온 방법이었기 때문에, 개혁파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학문의 방법론으로 매우 유용하였다.
Open
🔥🔥
32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불변하고 언약 배성들은 자신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구원받지만 구원받은 백성은 쌍방적인 언약 속으로 들어와 그 언약 생활을 충실하게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어떤 신자라 불리는 사람이 그 언약에 충실하지 않거나 저버릴 때 그는 그 행동을 통하여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함으로써 그가 언약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Open
🔥🔥
91
죄에 대한 오웬의 형이상학은 철학과 관련이 있다. 존 오웬은 추상적이고 올바른 이성이나 인간 지성의 생래적 원리로서의 철학이나 자연 신학을 정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이성의 활동 때문에 그것들은 오류가 있는 것이 되었으므로 그는 이성과 철학은 특별 계시에 의해 교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Open
🔥🔥
94
존 오웬의 성화론의 강조점은 이러한 죄의 역사하는 작용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구원받고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이 죄를 다룸에 있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모든 투쟁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한 가지를 회복하고자 경륜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의존 안에서의 절대적인 사랑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화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되며 이러한 사랑의 교통 안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가장 훌륭한 존재가 되고 거기에 합당한 작용을 하게 되어 그의 모든 삶이 덕스럽게 되는 것이다.
Open
🔥🔥
96
율법주의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실을 율법에 맞추려는 노력이지만, 복음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변화시켜 율법을 기뻐하고 거기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오웬의 입장이다...오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의 가르침과 사도 바울의 신학에 나타나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존재와 작용에 있어서는 그 둘이 통합을 이루는 일원론적인 인간관을 제시한다.
Open
🔥🔥
98
내재하는 죄는 이 모든 질서를 거스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질서는 자신에 의해 수립된 질서가 아니며 죄의 욕망을 따라 살게 하고자 하는 죄의 계획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부의 질서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님의 존재와 도덕적인 성품에 맞닿게 된다.
Open
🔥🔥
118
신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백한 양심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죄를 산출하도록 ‘조르는’ 정서와 지성의 동의를 기다리는 의지로부터 총체적인 강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죄를 산출하고 나서야 일시적으로 강제력이 해소되는데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마음의 더 큰 악한 성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 오웬은 이런 갈등 속에 있는 신자의 존재를 결코 비관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가 부주의하고 게을러도 될 정도로 낙관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신자 안에 역사하는 죄의 작용은 끊임 없지만 언약 관계를 토대로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두 가지 작용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무한한 용서와 은혜의 힘에 대한 무한한 공급이다. 신자는 믿음과 성령 안에서 온전한 순종을 통해 은혜 언약 안에서 약속된 유업들을 가지고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있다.
Open
🔥🔥
123
존 오웬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이런 식으로 시험과 시련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접근을 거부하고 통합적인 전망에서 이 두가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시련’이라는 것은 시험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이며 이것이 죄와 결부되어 개인의 삶에 적용될 때 시험이라고 본다...결국 이 시험 또한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야 할 존재임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Open
🔥🔥
128
시험을 당할 때 그것을 계기로 시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사탄이나 유혹하는 세상 때문이 아니라 신자 안에 있는 욕망 때문이다. 존 오웬은 유혹이 신자 안에 없는 것을 이끌어 낼 수 없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Open
🔥🔥
131
죄는 제일 먼저 신자가 충분히 용납할 수 있을 만한 아주 작은 카드를 제시한다. 그리고 양보를 받아 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 번의 양보는 또다른 양보를 요구하고 급기야는 그의 마음이 죄에 대한 욕망으로 충분히 불타오르도록 만든 후에 궁극적으로 지성을 설득함으로 죄를 산출하게 한다. 죄의 욕망으로 혼란스러워지고 융성한 죄의 영향력이 기승을 부릴 때에 신자의 지성은 죄에 안달하는 정서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는 합리화를 모색한다.
Open
🔥🔥
138
신자가 의지로써 선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전심으로 구한다면 하나님은 그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은혜를 신자들에게 무한히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은혜에 대한 존 오웬의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다음 기도를 생각나게 한다. “명하시는 바를 제게 주옵소서, 그리고 원하시는 것을 명하시옵소서.”
Open
🔥🔥
168
존 오웬은 결코 아우구스티누스의 모든 신학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아퀴나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존 오웬은 이들을 당대의 신학자들처럼 대하며 사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세와 종교개혁의 신학이 발전해 올 수 있도록 지적인 자양분을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제공해 주는 원천으로 여기며 활용하였다.
Open
🔥
30
그의 신학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경험적인 요소에 있다. 그는 주류 청교도들의 전통을 따라, 경험을 통해 진리임이 입증되지 않은 교리는 참된 교리로 수립될 수 없다고 보았다.
Open
🔥
54
존 오웬은 죄의 실재성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담론을 따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영적 선을 행하는 것은 은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악을 행하는 것은 악한 의지를 통해서인데 이것은 곧 선한 의지의 결핍이며 은혜의 결핍이라고 보았다.
Open
🔥
99
존 오웬에게 있어 인간의 마음의 틀은 죄의 성향의 지배를 받으면 죄스러운 틀을 지니게 되고 은혜의 성향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 은혜로운 틀을 지니게 된다. 전자는 자기 사랑과 정욕을 통한 육욕의 만족을 지향하고 후자는 하나님 사랑과 거룩한 열심을 통한 하나님의 기쁨을 지향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행복해지기보다 거룩해지기를 원한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이러한 마음의 틀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Open
🔥
111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 그것은 대부분 인간의 의지의 선택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특정한 생각이 마음에 착상될 때 그것은 반드시 의지작용을 거친다. 의지의 작용은 소극적으로는 선택하는 작용이고 적극적으로는 선택한 것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는 힘의 행사다...정서를 지배한 죄의 성향은 의지를 밀어붙여 하나님을 향해 맞서게 한다... 이로써 신자는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Open
🔥
116
존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강요’에서 신자로 하여금 자신이 죄에 빠지는 것이 마귀의 유혹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하였다...의지의 책임을 회파하게 하는 설명 때문이었다.
Open
🔥
141
존 오웬에게 있어 죄 죽임은 영혼 안에 있는 죄의 경향의 약화이며,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성향의 소멸이다...신자가 죄를 죽인다는 것은 완전히 죽여 존재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죄 죽임은 곧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고자 하는 인간 마음의 성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서 정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힘을 죽이는 것이다. 죄 죽임의 실천은 거룩한 삶을 위한 신자의 필수적 의무이다.
Open
🔥
153
COUNT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