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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는 시간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시간은 영화제작자가 결정하고, 영상도 어떻게 편집됐느냐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인식될 뿐이다. 따라서 어떤 한 순간을 마음만 내키면 오랫동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스틸 사진은 영화와는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다...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거나,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 사진은 단 한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예술품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세계와 관계를 맺게 만들면서도 이 세계를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게 만들기에 우리를 매혹하며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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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는 이미지에 기반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구매를 촉진하고 계급, 인종, 성의 갈등이 빚은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오락거리를 제공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이제 이미지 상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 자체와 동일시될 것이다. 경제 부문에서 소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를 무한히 생산하고 소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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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사진작가는 사진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수동성(그리고 편재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메시지’이자 사진이 드러내놓는 공격성이다...카메라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에 일종의 공격성이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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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우리는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고 사진을 찍는다...”정말 추하군! 사진으로 찍어놔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말은 “나는 저 추한 것이..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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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1840년대부터 화가와 사진작가는 여러모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용했는데 그 방법은 정반대이다. 화가는 구성하지만 사진작가는 드러낸다. 즉, 사진에서는 피사체를 확인하려면 우선 그 피사체를 지각해야 하지만 회화에서는 꼭 그럴 필요가 없다...사진에서는 (회화에서 중시되는)스타일의 형식적 특징이 부차적으로만 중요할 뿐, 무엇을 찍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즉, 어떤 사진(특히 너무 가까이에서, 혹은 너무 멀리에서 찍힌 탓에 도통 알아보기 힘든 이미지를 담고 있는 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 사진이 세계의 어떤 단면인지를 알기 전에는 그 사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카메라는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보는 행위를 부추기며, 보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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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소비사회에서는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훌륭한 선의로 찍고 사진 설명을 정확히 붙인 사진조차도 아름다움을 좇게 된다. 20세기 초, 미국의 방적공장과 광산에서 착취당하던 어린아이들을 찍은 루이스 하인의 사진에서도, 세월의 시험을 더 오랫동안 견뎌낸 것은 [시대의 당면 문제를 보여준] 제재의 적합성이 아니라 사진의 아름다운 구성과 우아한 원근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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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와 회화가 지닌 아우라 간의 진정한 차이는 (사진과 회화가) 시간과 맺는 관계의 차이에 있다. 시간은 회화에게는 안 좋은 쪽으로 자기의 흔적을 남겨놓는다. 그렇지만 사진의 경우에는 시간의 침식으로 인한 변형이야말로 사진이 지닌 미학적 가치의 주된 원천이자 사진 고유의 관심사이며, 사진이 사진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회화나 시는 단순히 오래됐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는 않지만, 사진은 충분히 세월을 타기만 하면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흥미로워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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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사진을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서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구, 그것은 오늘날의 모든 이들이 중독되어 있는 심미적 소비주의의 일종이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정신적 오염이다...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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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피사체를 분열증적으로 바라보는 아버스의 독특한 기준에 따르면,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닮았다거나 공통점을 갖고 있을 때에는 끊임없이 뭔가 불길한 징조를 자아내게 된다...아버스의 사진이 뛰어난 이유는 사진 속의 피사체가 우리의 감정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한 데 반해 그 분위기는 냉정하고 무미건조할 만큼 정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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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도시가 지극히 육감적인 장소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이 관음적 방랑자가 도구(즉, 카메라)를 쥐게되면 곧 사진작가가 되는 것이다...만보자는 도시의 겉모습보다는 도시의 어둡고 흉한 구석, 도시에서 방치된 사람들-다시 말해서 범죄를 탐지하는 탐정처럼 사진작가가 ‘탐지’해 놓은 현실, 즉 부르주아적 삶의 허울 뒤에 감춰진 현실에 매력을 느낀다...열정적이면서도 관대하고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무심한 중간 계급의 기본 태도, 이른바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빈민가를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배경으로 여긴 그 휴머니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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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자의 용어를 쓰자면, 사진이 지닌 최고의 소명은 인간에게 인간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사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확인해줄 뿐. “진정으로 동시대를 기록하고 싶다면 앞으로는 시각적 효과에서 설명을 배제해야만 할 것이다”...”사진은 비밀에 대한 비밀이다. 사진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당신이 아느 것은 더 줄어들게 된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게끔 만들어준다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진을 통해서 바라보는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를 취득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만들며, 결국 미적 의식은 고양시킬지언정 정서를 메마르게 만든다...야심적인 전문 사진작가에게(아름다움의 추구에 대한 형식주의적 정당화 대신) 휴머니즘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이유는 휴머니즘이야말로 사진 산업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혼란, 간단히 말해서 진실과 아름다움을 둘러싼 혼란을 감춰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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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예술로 인식되는 것은 사진 자체에(그렇게 볼 만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회화와는 전혀 다른(적어도 전통적으로 받아 들여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력과 취향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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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사진은 다양한 형태의 소유이다. 우리는 사진이라는 대용품을 통해서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을 소유하는데, 이런 소유 방식 덕택에 사진은 독특한 오브제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우리는 이미지 제작과 기계를 통한 이미지 복제를 통해서 무엇인가를(직접 겪기보다는) 일종의 정보 형태로 소유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세 번째 소유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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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대부분 자아도취를 위해 활용되는 사진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와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의 구분이 없는 한 쌍의 쌍안경처럼 카메라는 이국적인 사물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하고 친근하게 해주기도 하면서, 친근한 사물을 작고 추상적이며 낯설고 훨씬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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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재앙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안도감은 그 고통스러운 장면을 사진으로 보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보면서 다시 안도감을 느끼고 그 안도감을 강화한다. 자신들이 ‘저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이 이미지로 변혈될 때에는 대개 불가항력적인 특성을 갖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고, 그 어떤 사람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지-세계에서는 무슨 일인가가 이미 벌어졌고, 늘 이런 식으로 무슨 일인가가 언젠가는 벌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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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세계의 모든 것(예술, 재앙,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미 엄청나게 많이 알게 된 사람들은 막상 직접 현실을 대하게 되면 자주 실망하고, 놀라워하며, 감동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 이미지는 우리가 처음 겪어본 그 무엇에서 감정을 제거해 버리곤 하는데, 정작 사진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감정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일들은 직접 겪어볼 때보다도 사진의 형태로 겪을 때에 훨씬 더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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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발자크가 카메라는 인체를 감싸고 있는 각각의 겹을 훼손시켜 버린다고 의심한 것처럼, 이미지는 현실을 소모시켜 버린다. 카메라는 일종의 약이자 병이며, 현실을 전유하고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사실상 사진의 힘은 이미지와 사물, 복제물과 원본과의 차이에 따라서 우리의 체험을 반영하기 위해서 현실을 점점 더 근사하지 않게 만드는 힘, 즉 플라톤의 철학을 소멸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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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의 비판자들이 손택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절대로 빼먹지 않고 퍼붓는 욕설이 몇 가지 있다. ‘글이 산만하다’ ‘장황하다’ ‘아는 체한다’ ‘앞에서 했던 말을 뒤에서 바꾼다’ 등등이 그 중 대표적인 욕설인데, 잘 살펴보면 결국은 모두 똑같은 말이다. 즉, 손택의 글이 쉽게 술술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손택이 어려운 표현을 쓴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글의 흐름이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처럼 일직선으로(그러니까 서론, 본론, 결론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점은 손택 자신도 인정한 적이 있다. “제 사고 방식이요? 뭔가를 생각하려고 할 때마다 자꾸 다른 것이 생각나는 그런 사고 방식이죠.” 어느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이런 사고 방식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사진에 관하여]이다...요컨대 손택은 자신의 문학적 행위예술(해프닝)을 통해서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손택이 어느 지점에서 기존의 논의 방향을 갑자기 비트느냐이다. 바로 그 지점(굳이 예를 들어보자면 “~이다. 그렇지만 ~이기도 하다”라는 식으로 글의 방향이 바뀌는 부분)이 상이한 관점들간의 ‘충돌 지점’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을 해보게 될 수 있는 ‘출발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손택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을 즐겁게 밟아주는 것, 그래서 상이한 관점들간의 충돌이 주는 충격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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