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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체계적이라 여기는 모든 지식은 트리구조를 갖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트리구조의 지식을 반복해서 익혔다. 그런데 맥락이 다른 지식이 있다. 트리구조로 체계화할 수 없는 네트워크적 지식이다. 전혀 다른 영역의 지식을 연결하여 편집하는 네트워크적 지식은 원래 천재들만의 몫이었다…자세히 공부해보니 ‘의식의 흐름’이야말로 ‘창조성’의 본질이었다. ‘의식의 흐름’이나 ‘무의식’, ‘자유연상’과 같은 심리학적 개념들은 창조성을 발휘해야 하는 문학에 아주 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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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페인팅’…이 같은 현대 회화 앞에 선 관람객들은 좌절한다. 더 이상의 게슈탈트 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무의미한 집합…불안…’무조음악’…오늘날의 현대음악은 청중을 궁지에 몰아넣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개념으로 무장한 평론가들의 공허한 해석만 난무한다…관객들의 해석을 가능케 하는 편집의 기본단위들을 제거해버리면 더 이상의 상호작용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문제는 청중의 무지함 때문이 결코 아니다. 청중과의 상호작용을 시도하지 않는 ‘음악 생산자’ 집단의 오만과 게으름 때문이다. 무능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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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직접 실현하지 않았던 가능적 세계, 즉 신이 하마터면 창조할 수도 있었던 가능적 세계를 시인과 소설가는 모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에게 가능적으로 존재하는 창조의 모방’이라는 기막힌 표현으로 ‘창조’와 ‘모방’의 딜레마를 해결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신이 창조할 수도 있었던 가능적 세계에서 신에 관한 설명이 슬그머니 빠진다. 예술가는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창조의 모방’에서 모방은 빠지고 창조만 남게 된 것이다. 이후로 ‘창조성’은 ‘심리적 즐거움’과 더불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된다. 한마디로 예술은 ‘즐거움을 생산하는 창조 활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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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자유연상’을 주장했다.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유로운 연상을 좇아가면 무의식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 또는 ‘자유연상’이야말로 창조적 사고의 본질이다. 우리가 가장 창조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평소에는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천재’는 의식의 흐름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그리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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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을 거쳐 피카소로 이어지는 근대 회화의 게슈탈트적 시도는 시각적 대상에서 더는 제거할 수 없는 근본적 요소를 찾아내려 한다. 세잔은 원기둥이나 구, 혹은 원뿔로 대상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려고 했다. 피카소는 [소] 연작 같은 습작에서 볼 수 있듯이 대상의 단순화를 통해 해체와 재구성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나가려 시도했다. 세잔이나 피카소의 시도는 대상 구성의 단위와 편집의 원칙을 찾아내어 화폭 위에 재구성하려는 인류 최초의 창조적 프로젝트였다. 이렇게 대상의 재현이 무의미해진 회화는 바로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에디톨로지’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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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의 사용에 관한 기록은 13세기 후반부터 나타난다. 그러나 1450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으로 독서 욕구의 증대와 안경의 개발이 뒤따랐고 1500년경부터 ‘유리 혁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오목렌즈와 볼록렌즈가 만들어지고, 이에 상응하는 광학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회화의 느닷없는 정교함과 믿기 힘든 사실성도 바로 이 유리 혁명의 결과라고 호크니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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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어느 시절에 만들어낸다. 그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가를 찾는 일은 지식 구성사 혹은 지식 편집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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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형태, 일본은 색채, 한국은 선”…야나기는 조선의 미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조선의 역사가 끊임없는 슬픔의 역사였으며, 바로 이 슬픔이 조선의 미를 낳았다고도 이야기한다. 이 슬픔의 미가 사람을 매혹하는 것은 인간의 차원이 아니라 신의 차원이기 때문이라는 신비주의적 설명도 한다…’조선의 비애미’와 관련된 증거를 야나기는 조선인들의 생활 속에서 찾아낸다…조선인의 의복이 모두 하얀색…조선인들에게 즐거움이 사라진 또 다른 증거로, 야나기는 장난감이 많은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조선 아이들의 장난감이 매우 적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울러 조선의 도자기에는 꽃병이 없다는 사실도 조선 사람들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중국과 일본이 따라갈 수 없는, 뛰어난 도자기 기술을 자랑하는 나라에 꽃병이 없는 까닭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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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슬링거는 이렇게 선배 람스의 디자인을 대놓고 훔쳐 와서 소니와 애플의 제품들을 디자인했던 것이다. 잡스는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 에슬링거는 잡스가 원했던 바로 그 ‘위대한 예술가’였다. 현대 산업디자인의 혁명으로 여겨지는 애플의 디자인은 이 같은 뒤틀린 ‘편집’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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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에서 피카소, 그리고 바우하우스의 칸딘스키와 클레가 시도한 것은 바로 이 편집의 단위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였다. 상호작용을 통한 창조적 에디톨로지가 가능하려면 편집의 단위와 편집의 차원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그 결과물들은 상호작용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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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의 궁극적 목적은 ‘기념하는 예술’과 ‘장식적 예술’의 구분이 사라지는 모든 예술 작업의 통합이라는 커다란 구조다…같은 정신에 기초한 이 공예가들은 건축물을 ‘골격 건축, 완성, 장식, 설치’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디자인’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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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식인들은 현실 정치의 변혁을 통해 사회구조의 구체적 해결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문제를 내면화하여 관념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들의 언어에서 ‘예술의 숭고함’과 같은 추상적 단어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추상적 언어들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독일 지식인의 자폐증’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한다…결국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이것이 바로 독일 역사학계에서 전후에 나치 독일의 과거를 반성하며 ‘독일의 특수경로’라는 개념에서 규명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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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해당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기술’을 연마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었다는 이야기다. 기술과 예술이 동의어였다는 사실은 참 놀랍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규칙을 파괴하는 창조성이나 창의력 같은 단어는 예술의 어원인 art와는 정반대 개념이었다는 것이다…규칙적이어야만 예술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규칙성과 더불어 활용 가능한 지식에 근거한 기술만이 예술 영역에 포함됐다…기술과 동의어였던 예술이 ‘규칙에 관한 지식’과는 관계없는 ‘상상력의 영역’으로 재규정된 것은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다…바퇴가 이야기하는, 순수예술이 공유하는 ‘동일한 한 가지 원리’란 바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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