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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선한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예술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은사지만, 다른 모든 선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거승로 이용될 수 있다...칼뱅은 우상숭배를 “은사를 주신 분 자체가 아니라 은사를 예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내 삶에 어떤 우상이 자리 잡고 있는지 찾아내는 방법은, 혹 어떤 은사가 그 은사를 주신 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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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미첼은 인간이 자유의지 없이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규정되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제안했다. “우리는 그저 크디큰 기계의 아주 작디작은 부품일 뿐”이라고 미첼은 읊조리듯 말했다. “인간이 지닌 영향력은 아주 미미하다. 우리는 인간이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하는 깨달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미첼은 자신의 유물론적인 입장이 ‘겸손’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주장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을 로봇으로 환원시키는 주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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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칸트는 도덕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유로운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도덕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고, 도덕은 결국 정의가 우세하지 않고서는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우리는 내세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도덕법이 다 쓸데없는 공상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말이다...’것처럼’이라는 표현은 2층으로 던져진 한 개념을 우리에게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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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인간을 그저 복잡하고 정교한 동물 정도로 보는 입장은....과학적 방식에 대한 믿음을 갉아먹는다.”...무신론자도 과학 연구를 할 때는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합리성에 의존할 도리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요점은, 합리성에 의존해 연구 작업을 할 때 무신론자에게는 아무런 철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성을 지닌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인간의 합리성을 신뢰할 근거가 있다. 무신론자와 유물론자 중에 이 문제점을 인식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다윈처럼 이들도 자신의 회의주의를 선택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가 배격하는 개념, 특히 하나님에 관한 개념의 가치를 깎아내릴 때만 회의주의를 적용한다. 이들은 자기 세계관은 은근슬쩍 예외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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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현대의 무신론자 뤽 페리도 똑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평등 개념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대 사회의 부자와 가난한 자, 주인과 종 사이에 있었던 위계질서를 전복시킨 것이 바로 기독교였다. “기독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다 ‘형제’로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동일한 위치에 있다”고 페리는 말한다. “기독교는 최초의 보편주의 윤리다.” 일부 용기 있는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에서 인권 개념을 차용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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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세계관을 공부하는 중심 동기는 ‘이웃 사랑’이어야 한다(마22:39).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되 이웃의 질문을 경청하고 답변을 찾으려 애쓸 수 있을 만큼 사랑해야 한다...”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이 부분에는 진리가 있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리고 이 부분에는 사랑이 있다. 헬라어 원전에서 베드로가 ‘대답’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단어는 ‘아폴로기아’로서, ‘변증’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베드로는 지적 질문에 답변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위의 구절은 편지 말미에서 부당한 고난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는 부분에 등장한다. 앞서 베드로는 자기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의를 위해 고난받기를 기뻐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훈계했다. 베드로는 왜 이런 맥락에서 변증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베드로는 변증의 목적이 단지 더 훌륭한 논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훌륭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적의와 적대를 겪고 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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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창조 세계에서 무엇이든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은 다 우상이다...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거부하면 창조 세계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신격화하게 될 것이다. 우주 그 너머에 계신 초월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이들은 우주에 내재하는 어떤 힘이나 원리에서 신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다...유물론은 ‘위의 것’이 아니라 ‘땅의 것’(골3:2)에 마음을 두기를 촉구한다.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자기 자신을 불신자로 여기기를 좋아하지만, 사실 이들은 물질(혹은 자연)을 대체 종교로 갖고 있는 독실한 신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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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기원들 두지 않은 “(갈1:11)진리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초역사적 진리...객관적 진리는 창조주가 인간에게 구원의 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역사와 우주에 대해서도 자신의 영원하고 초월적인 관점을 말로써 전해 주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쉐퍼의 책 제목을 차용해서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거기 계신’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침묵하지 않으시는’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의사를 전달하셔야만, 무한이 유한으로 내려와 주어야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의 개별 지성에 갇혀 있거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지성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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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관용, 다양성, 공정함이라는, 소위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기치 아래 자기들의 우상을 널리 장려할 수 있지만, 실제 나타나는 결과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이고, 완전함이 아니라 파편화다. 사람들은 무너진다. 인간은 실패하는 신에게는 반드시 반역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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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람은 어떤 식으로 하나님에게서 숨으려고 하는가?...사람은 우상을 만듦으로써 하나님을 피한다는 것이다. 창조주를 거부하는 이들은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대체물을 찾으려고 한다. 바울은 ‘바꾸었다’는 말로 이런 행동의 기본 동력을 강조한다...롬1:23 (그들은)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5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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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철학자 솔 스밀란스키는 자유의지를 가진 행위자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결정론자다. 하지만 그는 이 환상을 ‘운 좋은’ 환상으로 여긴다. 이 환상 덕분에 문명화된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자기 세계관이 가르치는 내용에 근거해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모순적인 믿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부분이다...그들은 일반계시의 진리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진리를 가리켜 쓸모 있는 허구라고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진리를 은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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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더욱이 정의에 대한 어떤 보편적인 기준이 없으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바로 그것, 곧 불의와 압제에 저항할 길이 없어진다. 한 철학자가 말한 대로,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도덕 원리가 없으면 다른 문화나 다른 시대의 가치를 비판할 수 없을 듯하다. 그 문화나 그 시대가 아무리 혐오스럽더라도 말이다.”...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급진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제이콥스가 말한 것처럼 “사실상 정치적인 현재 상황에 저항할 힘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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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마11:2-5). 이 기적들은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일어난 것이었기에, 실제 있던 일로서의 위상을 예수의 친구는 물론 적들까지도 확증해 줄 수 있었다....예수께서는 물리적인 증거를 제시하셨다...이렇게 두말할 수 없게 만드는 확실한 대응이 예수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예수의 사역은 질문과 대답, 주고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공개 사역이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바울은 기독교 세계관의 근거를 이루는 사건들이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행26:25~26)...기독교 메시지가 전하는 내용은 사실에 대한 믿음 체계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다. 이 사실 지향성은 복음의 핵심 명제와 사건들이 살아 숨 쉬는, 의심의 여지없는 지적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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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유물론 철학과 또 그에 따른 필연적 결론, 곧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이론을 견지했을 때 현실에서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결정론 그룹...주어진 문장을 읽고 자기들에게 도덕적 선택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도덕적 책임도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자유의지가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믿는, 혹은 그렇게 믿도록 유도된 사람들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높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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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신플라톤주의의 중심 교의는 세상이 만물의 본원the One 혹은 절대자the Absolute라고 하는 영적 본체의 발출emanation이라는 것이다. 샘물이 높고 낮은 계단식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듯, 만물의 본원은 몇 단계를 걸쳐 아래로 흘러내리는 내림차를 발출했다. 영적 실체에서 인간으로, 이어서 지각 있는 피조물(동물)로, 생물(식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물질(바위 등)의 단계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생명의 사다리 혹은 존재의 대사슬이라고 한다. 영적 생명의 목표는 사다리를 다시 올라 물질에서 벗어나 그 만물의 본원과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이 신플라톤주의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자연에 영혼(정신)이 스며들어 있다고 하는 개념 때문이었다...랠프 월도 에머슨은...”전체의 영혼...영원한 하나the eternal ONE”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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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인간 정신이 전적으로 두뇌에 의지하고 두뇌는 생화학에 의지하며 생화학은 (결국) 원자의 무의미한 유동에 의지한다면, 그 정신의 생각이란 것이 과연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내가 나 자신의 생각을 믿지 못한다면 무신론으로 귀결되는 주장 또한 물론 믿지 못할 것이며, 그러므로 나는 무신론자나 다른 무엇이 될 이유가 없다.”...본질상 유물론자들은 기독교 인식론을 암묵적으로 가정해야 한다. 적어도 자기주장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그래야 한다. 사실 유물론을 주장하는 단순한 행위조차도 이미 모순이다. 내가 만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물질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 자체도 물질인가?...물론 아니다. 그 진술에는 언어적 의미가 있다. 그 진술에는 논리적 속성이 있고, (타인에게 자기 의사를 전하는) 사회적 기능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물질의 차원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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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프랜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사랑이 가시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가리켜 ‘최종 변증’이요, 지쳐 있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유일한 광경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사는 삶의 메시지로 확증될 때에만 열매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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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
C.S.루이스가 관측한 내용을 조금 각색하자면, 세상 사람들의 회의주의는 겉껍질일 뿐이다. 그 회의주의의 용도는 타인의 신앙을 말할 때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거의 회의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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