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Search
메모
🔥
페이지
보통은 미적으로 불쾌한 역겹고 기괴하고 추하고 뒤죽박죽인 것이 미적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실제적인 위협이 없는 경우...우리가 가진 통제능력의 시험대로 여겨질 때...종종 적극적으로 공포의 감정을 추구하고 즐긴다...적어도 어떤 특정한 종류의 미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럽고 불쾌하고 추한 것들이 표준적인 좋은 미적 틀질일 수 있지 않을까? 플라톤의 [국가]에는 대학살의 현장을 지나가는 레온티온읭 이갸기가 다음 같이 나와 있다. ‘그는 다가가서 시체들을 보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역겨움으로 망설였다.’...레온티온이 시체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얻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기괴하고 무섭고 혐오스러운 특질들이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사람들은 종종 사고잔해를 보려는 이유만으로 사고현장 주위에 몰려들거나 사고현장을 지나칠 때 차의 속도를 늦추곤 한다. 섬뜩한 살인장면을 담은 잡지, 비디오, 컴퓨터 게임들이 일상적으로 팔리고 있으며...이러한 관심은 예술에도 드물지 않다.
Open
🔥🔥🔥
108
비록 여러 예술가를 비교하거나 어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다루는 전시회도 흥미 있지만, 어떤 예술가의 작품의 본성과 그가 그 작품 안에서 무엇을 표현했는지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방법은 그 예술가의 연대기적 발전 과정을 보고 그가 무엇에 반응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는 점이다...예술가가 무엇을 달성하려고 노력했는가를 경솔하게 무시해 버리고 그 대신 오직 예술가가 창조한 작품에 대해서 감상자가 가질 수 있는 가능한 경험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비평의 부류는, 타락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심하다면, 심각하게 오도된 것이다.
Open
🔥🔥
58
미켈안젤로의 <피에타>가 지닌 위대함은 마리아 자신의 희생에 대한 키멜안젤로의 특별히 심오한 통찰이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도 있으며, 이 점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마리아를 향해 미켈안젤로가 이해한 바와 유사한 정서를 갖도록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이 단지 작품이 제공하는 경험일 수만은 없으며, 미켈안젤로가 작품을 통해 남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통찰 또한 가치가 평가되어야 한다. 작품의 가치가 작품이 감상자들에게 제공하는 경험의 가치로 항상 모두 환원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고전적인 종교 예술들뿐만이 아니다.
Open
🔥🔥
62
브르통에 따르면 신경 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예술은 우리의 자기 인식과 세계이해에 도전하는 예술이다...그러나 이 혁명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혁명이 무엇에 반발한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Open
🔥🔥
72
우리는 명제로 기술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느낌이 경험에 있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지식과 이해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만 주장하면 된다...좋은 예술작품들에는 그러한 이해를 전달하는 특별히 가치 있는 방식이 있다...뭉크의 <절규>는 우리를 실존적인 중심인물과 동일시하게 하고, 고립과 고뇌가 우리를 장악하는 힘을 느끼게 하며, 그런 세계의 모습에 어떤 반응을 취하도록 만든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같은 세계상을 우리의 지성에 맞게 펼쳐낸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즉각적인 방식으로 어떤 진리, 통찰, 또는 가능성들을 파악하게 하고 그것들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만든다. 이는 순수한 이성이 좀처럼 하지 않는 방식이다...아직 확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통찰들이 특별히 잘 전달될 수 있는 심리적으로 생생한 경험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Open
🔥🔥
154
좋은 예술의 표지는 예상을, 예기치 않았던 방식으로 추상화하고, 과장하고, 뒤엎는 데 있다. 이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 충격으로서의 가치, 무언가 있다는 제스처는 만약 그것들이 궁극의 목적이 된다면 그 자체로는 하찮은 것이다...고야의 <전쟁의 참화> 연작 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모두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서 충격을 준 것이다. 그리고 감상자의 경험을 의도대로 형성하여 예술가 자신이 목적했던 바를 달성하기 위해 이들 작품에서 사용된 예술적 수완은 훈련의 결과로 어렵게 얻은 것이며 효과적이다.
Open
🔥🔥
288
예술에 대한 궁극적인 테스트는 작품을 가치 있다고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이유를 가져야 하는가에 있다...무엇보다도 감상자는 예술가가 하려고 하는 것에 개방적이어야 하고,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작품이 무엇을 지칭하고 있으며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상태, 적확한 식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경험을 통해 발달되어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수준 차이가 나는 이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엘리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경험의 풍부함은 그 경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상상력 풍부한 예술의 경치 속을 여행하는 것, 그러면서 거기서 얻게 되는 경험은 우리의 내적 삶을 도야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Open
🔥🔥
308
예술작품에 대한 어떤 경험이 높은 가치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성취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인정한다면 예술적 가치가 감상자의 경험에 의존한다는 생각은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주장이 될 것이고, 만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명백히 틀린 주장이 될 것이다. 어떤 예술적 성취의 본성과 가치는 우리가 그것을 경험할 때의 가치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근본적인 예술적 성취들과 예술작품에 대한 우리의 경험들은 그것이 가져오는 즐거움이나 값진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Open
🔥
50
미적 판단의 중심사례를 미(beauty)로 간주한 칸트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골몰했다.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은 주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미를 경험할 때 느끼는 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한 우리가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할 때의 그 판단은 객관성에 대한 요청을 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 판단에 동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칸트는 어떤 것을 미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목적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대신 그것의 형식을 감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우리는 그것이 어떤 목적성 또는 디자인(계획)에 부합하도록 형태가 만들어져 있다는 식으로는 보지만,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이론적이거나 실용적인 목표 같은, 거기서 더 나아간 관심을 갖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그 조각을 예술로서 즐기는 것은 조각에서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Open
🔥
74
로버트 휴즈는 우리의 동시대 예술은 변덕스러운 유행과 상업주의, 자기 스스로 자기를 추켜세우기에 집착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특징과 함께, 현대예술로부터 타락한 것이라는 특징을 가지고서도 부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예술에는 또한, 칸트의 생각과는 달리, 혐오스럽고 추하고 기괴한 것도 미적인 성질일 수 있음을, 즉 그것들도 긍정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 특징으로 포함되어 있다.
Open
🔥
112
물론 부분적으로는 미적 특질들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그것이 미적인 관심에 보답하는지가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가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적극적 감상을 하게 될 때 드러나는 우리의 반응이나 통찰, 이해가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심오하거나 흥미롭거나 시사적이거나 삶에 진실하거나 통찰력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작품은 예술로서 더 좋은 것이 된다. 아름다움과 미적 관심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을 우리는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Open
🔥
126
우리는 앞서서 예술가가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자신의 상상 속에 있었던 영상을 펼쳐내려고 시도하는 것이 그것을 보는 이들의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그런 경험보다 우선하여, 중요하다는 것을 살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예술가의 고투의 결과물인 좋은 또는 위대한 작품을 보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들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예술적 가치란 결국 전부 미적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Open
🔥
132
우리가 전쟁의 공포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에는 고통, 잔인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고야의 연작이 우리가 여태 몰랐던 무언가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우리가 보통은 피해 버리고 마는 것을 생생하고 노골적이며 가혹한 방식으로 전면에 내세운다. 이 작품은 반강제적으로 우리에게 전쟁의 살상과 야만성과 생명의 파괴에 대해 생각을 모으도록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또한 이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폭력과 파괴의 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하도록 이끄는 동인에 대해서도 고찰하도록 만든다.
Open
🔥
144
심미주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많은 예술작품들은 도덕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지만 만약 지니는 경우 도덕적인 평가는 원칙적으로 예술적인 평가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아마도 우리는 액자가 간접적으로 그림의 감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만약 액자가 걸기에 너무 무겁다거나, 너무 웅장하고 화려해서 소박한 수채화를 감상하는 데 집중하기가 어렵다면, 이 경우 액자는 그림감상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액자가 그 수채화의 예술적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품의 도덕적 특성이 작품 감상을 방해할 수는 있다...심미주의는 예술경험의 질과 그 때 경험되는 내용을 개념적으로 분리하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가끔 예술경험의 질은 전달되고 있는 것이 전달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여부에 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이 도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 작품의 예술적 질을 평가하는 것은 종종 작품의 이해가능성 또는 적절성에 대한 물음을 야기한다.
Open
🔥
208
애디슨은 조롱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 모든 진지하고 심각하고 품위 있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공격함으로써 사람들이 덕성과 양식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고 제안한 바 있다...풍자와 캐리커처, 조롱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종종 부당하고 도덕적으로 왜곡되고 사악해지기도 한다...하지만 그러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왜곡 때문에 그 작품들은 권위를 폭로할 수 있고 무조건적으로 어떤 태도와 행동, 관습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도덕적인 결점이 예술적인 목적의 달성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줄 수 있는 장르도 있는 것이다.
Open
🔥
224
예술작품의 가치는 작품이 제공하는 경험의 질, 그리고 작품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통찰과 이해에 부분적으로 의존한다...여기에서 생각의 핵심은, 베이컨의 작품에서처럼, 우리는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통찰력이라는 잠재적인 혜택 때문에 가끔 실제의 도덕적인 판단들을 유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경험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악을 경험해야 한다.
Open
🔥
234
현대의 시각예술은 진정한 예술적 성취와는 관계없이, 상품을 판매하고 예술가를 하나의 브랜드로서 마케팅하는 것이 되어 버렸으며,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상품가치가 예술적 가치를 반영하는 대단한 사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사기는 자체적으로 영속화되는데, 왜냐하면 예술가들, 갤러리들, 그리고 미술품의 구매자들은, 과장된 상업용어들에 의해 미화된 설치작품들과 이미지들과 그림들이 사실은 누구든 날조할 수 있는 것임을 숨기기 위해 반드시 그런 사기 행위의 일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Open
🔥
285
COUNT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