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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의회는 종교개혁보다는 전쟁에서의 승리에 더욱 관심을 보였습니다...스코틀랜드 교회를 결과적으로 이용한 셈...나중에는 외면하고 심지어 방해하는 모습...조만간 크롬웰의 군대가 스코틀랜드까지 침공하는 최악의 시국이 예측되었고, 따라서 스코틀랜드 특사들의 처지는 매우 곤란...하지만...그런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서 총회의 과업에 집중했던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희생과 수고로, 신앙고백서를 비롯하여 교회의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한 대교리문답과 소교리문답까지, 총회의 모든 프로젝트가 완수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회의 기간 내내 악전고투하며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웨스트민스터 총회가 해낸 업적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그분들이 품었던 ‘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아닐까 합니다. 복잡한 정치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그 안에서 고뇌하고 헌신했던 분들의 마음과 자세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 우리 자신에게도 그런 현실과 마주할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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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주의는 교회가 크게 잘못되기 시작한 첫걸음이자, 교회의 타락 그 자체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바로 이것을 개혁했던 겁니다. 루터는 ‘만인사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사제라는 뜻이 아니라, 참된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가 사제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만인사제’는 일종의 언어유희로, 사제주의는 비꼬는 말이었지요. 종교개혁은 이렇게 교회 타락의 근본 원인이었던 사제주의를 철폐한 것입니다...신자가 목사를 ‘거쳐서’ 하나님께 나아간다거나, 더 나아가 ‘우리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해줄 사람’으로 여긴다거나, 심지어 우리 죄를 용서해주는 존재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제주의이며, 종교개혁이 겨냥했던 개혁의 대상입니다...우리에게 중보자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우리는 이제 사제가 필요 없기에, 평신도라는 용어는 불필요할뿐더러 지양해야 할 용어입니다...교우, 성도, 신자 등의 말로 바꿔 부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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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임스 6세의 교육을 맡았던 조지 뷰캐넌은 프랑스 위그노의 영향을 받은 철저한 칼뱅파였으며, 장로교회 정치제도에 대한 소신도 강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왕실 교사의 자격으로 당시에만 해도 급진사상이었던 ‘입헌군주제’를 어린 왕에게 가르쳤습니다...문제는 그 과정에서 때로는 회초리를 들기도 했으며, 심지어 제임스 6세의 엄마 메리 여왕이 폐위된 이유도 직설적으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어린 제임스 6세의 마음은 상처를 입었고, 반항심이 싹텄던 모양입니다. 한술 더 떠서, 그 후임자로 들어온 앤드류 멜빌은 더욱 엄밀한 종교개혁 사상가...장로파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교육에 시달리며 청소년 시기...루스벤 습격...장로교회를 증오하게 됩니다...아무리 바른 신앙을 추구하고 엄밀한 종교개혁을 추구하더라도, 비인격적으로 거칠게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개혁은 성경대로 해야 하지만, 개혁의 대상이 늘 ‘인간’이므로, 인간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인간이란 참 오묘한 존재라서, 아무리 좋은 것도 억지로 강요하면 반발심만 싹트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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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정교분리라고 하면 ‘교회는 정치문제에 간섭하면 안 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오히려 거꾸로 이해해야 합니다.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세속 정부는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영적인 문제에는 간섭할 수 없다. 2) 교회는 세속 권세를 직접 다스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에 따라 세속 정부에 충고(권면)할 수 있다. 즉, 교회의 영역과 세속 권력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으며, 서로 할 일과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각자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의미입니다...이것을 오해하여, 교회는 정치 문제에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은 한국 교회의 오랜 실수이자, 고쳐야 할 과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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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유흥장려 정책. 제임스 1세의 종교정책은 이런 스타일이었습니다...’스포츠 관련 법정’...쉽게 말하면 주일에 ‘놀도록’ 하는 법입니다...주일에 경건하게만 지내지 말고, 춤도 추고 게임도 하고 스포츠도 즐겨라...주일을 경건하게 지키는 것은 청교도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제임스는 어떻게 하면 청교도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이런 법을 만듭니다. 겉으로는 일종의 복지정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청교도 말살정책입니다...실제로 이 법이 시행된 뒤, 잉글랜드 교회는 급속도로 타락합니다. 결국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 무리의 청교도들은 이 나라에 더 이상의 희망을 두지 못하고 신대륙으로 떠납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 호’를 바다에 띄운 청교도들에게는 바로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것입니다...강력한 탄압보다는 이런 포용 정책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긴장을 풀게 만들고, 슬그머니 들어 와서 핵심을 빼앗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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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나쁜 놈’일까요?...사실 어찌 보면 제임스도 불쌍합니다. 그는 원만하고 둥글둥글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도적인 개혁에 머물고자 했던 보수적인 백성들은 제임스를 지지했고, 종교개혁에 지쳐버린 많은 청교도들도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나름대로 제임스는 좋은 통치자의 역할을 했던 겁니다. 장로파를 극단적인 좌파로 본 것은 제임스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로파 사상을 과격하다 여겼습니다...어쩌면 이런 트라우마를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게 만들어주고 있을지 모릅니다...지금도 우리는 종교개혁에 대해 한 줄이라도 배우면 그것을 곧장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 적용하고 써먹으려 듭니다. 그러나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해서 교회가 더 빨리 개혁되는 것? 아닙니다...뭔가를 바꾸고자 할 때는 지극히 조심...말과 글의 표현을 가다듬어야 하며, 예의와 절차를 지켜야...기다릴 줄도 알아야...우리는 옳고 그름에 있어서 항상 분명함을 추구해야 하나, 그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 도구로 써야 합니다. 그걸로 누구를 공격하기부터 한다면, 그래서 진리를 늘 극단적인 것으로 비치게 한다면, 그것은 교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그런 행동이 종교개혁자들의 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또한 희생을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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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대체 국민언약의 주역들은 누구였을까요? 이 시대의 개혁자들은 바로 제임스 1세 때 삐약삐약 자라나던 어린 학생들, 또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두웠던 시절을 견디며 신앙과 학문을 단련했던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스코틀랜드 교회는 모든 것이 막혀버리고 암담하고 불안하던 시절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음 세대의 교육’에 혼신을 다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준비된 아이들은, 한 세기 뒤에 찰스 1세의 말도 안 되는 종교정책이 조국을 어지럽혔을 때, 분연히 맞설 수 있었던 겁니다. 오늘 우리가 희망 없는 시대라고 절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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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는 마치 학회나 세미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총회는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총회는 원점에서부터 재검토...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여럿이 모이는 전체 모임과 별개로 분과별 소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토론이나 원칙은 전체 모임에서 토론했고,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토의와 문서 작업은 소위원회 차원에서 추진했습니다...질서 있게 진행.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 특사들은 더욱 바빴습니다. 총회의 초기 분위기는 모두가 그들의 입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라 교회를 개혁하자고 했으므로, 그 모범이 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그들의 책무였습니다. “이런 것은 장로교회에서 어떻게 하나요?” 거듭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스코틀랜드 총대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무려 5년, 7개월, 22일을 계속합니다!...거의 ‘날마다’ 모여서 1163번 회의를 진행.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근무. 오전:전체모임-예배, 기도, 토론. 9~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오후:위원회별(분과별) 모임, 토론 및 결과물 산출. 저녁:개별 토론, 성경 묵상, 총회와 관련된 스터디 및 저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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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세력 균형...정말 신기하게도, 세 분파는 총회에서 오묘한 힘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장로파는 다수라서 힘이 있었고, 의회를 등에 업은 에라스투스파는 주최측이라서 힘이 있었으며, 독립파는 군부와 친했습니다. 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이 독립파였거든요. 이러한 힘의 균형 때문에 총회는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하면서 치열하게 논쟁해야 했습니다...하지만 대체로 모두가 기뻐하는 합의가 이루어질 때가 더 많았습니다...모두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들은 모두 어떤 ‘교리’를 택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뜻이 일치했습니다. 교리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교회론의 차이였지요. 논쟁의 핵심은 대부분 교회정치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세 분파는 교회론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로 인해 총회 기간 내내 논쟁을 계속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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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파vs독립파. 장로교회파의 기본 입장 : 교회는 원래부터 장로회 형태로 존재했다. 성경을 보자.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고린도 교회를 볼 때 그러하다.(딤전4:14, 5:17, 행15:2, 4, 6, 대하19:8 등) 목회자 임직도 어느 한 개인에 의해서 시행되어서는 주교제도의 폐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본적으로 장로회에 의하여 시행되어야 한다. 독립파의 기본 입장 : 개별 교회만으로 충분히 완전한 교회다. 교회의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는 노회나 대회 등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목회자 임직도 개별 교회가 알아서 할 문제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떤 형태로든 ‘상회’가 존재하면 그것은 권위적이 되어 우리 교회의 독립성을 해칠 것이다!...하지만 여기엔 논리적 모순이 있습니다. 물론 노회가 타락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반대로 개별 교회가 타락할 가능성은 없나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 딱히 대책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독립파 형태를 취한 몇몇 네덜란드 교회들이 훗날 방종으로 흘렀고, 누구도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던 역사가 있습니다...그럴 때 노회가 없으면 그 교회의 타락을 막거나 교정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독립파의 한계였습니다...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본성, 즉 누구나 나약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 보자!” 결국 총회는 성경 주해와 토론을 계속한 끝에, 노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1차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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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군부의 입김...독립파였던 군부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은 정치력을 발휘, 의회(상원, 하원)와 총회의 대표로 구성되는 ‘확대연석회의’를 만들도록, 의회의 명령을 따냅니다. 그리고 조정위원회 성격의 회의를 통해, 독립파를 관용하라는 압력을 총회에 행사합니다...총회는 원칙적으로 성경적인 판단을 해야 합니다. 의견이 다를 경우 무조건 중도를 택한다고 해서 그게 답이 되는 건 아닙니다...의회는 완전히 독립파의 기를 세워주는 형태로 총회를 간섭했습니다...스코틀랜드 총대들은 참았습니다. 그리고 총회도 의회 앞에 자세를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문구를 수정합니다. 교회는 노회 안에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했던 문구를 살짝 수정합니다. 대의를 위한 양보를 해준 겁니다. 결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노회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Must Be)”라는 문구를 “있는 것이 좋다(May be)”정도로 바꿉니다. 노회를 두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겁니다. 독립파는 이제 만족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우리는 그동안 총회의 ‘결과물’만 보고 판단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면 과정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과정까지 알아야 지금보다 더 앞선 개혁이 가능합니다. 과정을 모르면 그 안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먼저 해주었던 치열한 고민과 고뇌, 그리고 희생을 모르게 됩니다. 그런 것을 모르는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더 나은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근거 없는 허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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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비틀어진 가르침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면죄부>라는 것...<면벌부>...고해성사 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노라 하면 사제가 일종의 벌칙(보속)을 줄 때가 있습니다. 뭐, 반성 차원에서 그런 거 좀 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문제는 그게 민간에 퍼지는 과정...예를 들어, 누가 뭘 훔치다 잡혀서 강제노역 100일...허리를 다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실행이 불가능하니까 벌금으로 대체...벌금을 내고 영수증...말하자면 그런 영수증이 면죄부의 시작...동네 친구와 대화...”재수 없게 걸렸는데 돈 좀 내고 해결했다” “축하해, 편리하네. 돈을 내면 벌이 없어진단 말이지!?” 이런 식으로 본래의 뜻과 달리 악용되고, 또 그것이 관행이 되어 수 세대를 흘러갑니다. 그러면 어느덧 마치 이것이 정통 교리라도 되듯이 교회 안에 자리를 잡는 겁니다...면죄부 선전 문구...”면벌부 판매대의 돈 통에 동전이 짤랑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던 영혼이 훌쩍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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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 지방의 선제후 프리드리히...놀랍게도 그는 루터를 납치(?)합니다. 교황청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요원들을 보내어 아무도 찾지 못할 숲속으로 빼돌린 것입니다...철저한 비밀 작전에 의해 그는 바르트부르크의 한 성에서 1년 가까이 숨어 지내게 됩니다. 루터는 안전한 곳에서 연구와 저작활동에 몰두합니다. 특히 독일어 성경번역 작업은 당시 그가 우리어낸 대표적인 업적입니다. 독일 백성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후 수십 년의 독일 종교개혁은 바로 여기서 힘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알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그것을 도운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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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정신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 살해당했습니다...지식인들은 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하던 칼뱅을 찾아갔습니다...특히 제네바에 칼뱅이 만든 학교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그들은 종교개혁의 신앙과 삶과 교회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학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언어와 철학 등의 도구도 익혔습니다. 단순히 교리만 가르쳐준 게 아니라 과학, 문화, 예술, 철학 등등, 모든 학문 분야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풍성하게 토론했습니다...망명 왔던 사람들은 그 후로...굳이 고향땅으로 되돌아갑니다. 여전히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내용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친척과 이웃에게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 다시 돌아갔던 겁니다...실제로 상당수는 잡혀서 고문당하며 죽임을 당했지요.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을 그 지역에 실현시키기 위한 고귀한 희생이었습니다. 그 두려운 발걸음을 떼야 했던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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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6세의 개혁은 무척 진보적이었고, 메리의 통치기간은 그것을 다 부서뜨리기엔 너무나 짧았습니다. 덕분에 엘리자베스 1세는 비교적 쉽게 잉글랜드를 다시 개신교 국가로 돌리는 데 성공했고, ‘통일령’을 통해 예배 의식을 성공회 스타일로 통일시켰습니다. 그리고 39조 신앙고백서의 확립을 통해 교리의 개혁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잉글랜드 교회의 모습은 칼뱅파의 입장에서 볼 때 여전히 완전한 개혁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교리적인 측면에서 개혁이 되었다 하더라도, 교회의 조직이 여전히 주교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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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1세 시절...더 나은 종교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일반 대중에게는 ‘까탈스러운 사람들’로 보이게 됩니다. “사제를 다 없애야 합니다!”, “사제를 연상시키는 성직자 가운을 벗어야 합니다!” 이런 식의 주장은 당시 잉글랜드 국민 대다수의 호응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런 현실적인 벽이 종교개혁의 발목을 잡는 새로운 문제가 되어버립니다...이후의 역사는 바로 이런 두 주장이 서로 싸워가는 역사입니다. 여기서 후자의 생각, 즉 ‘더 순수한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청교도(Puritan)라고 불렀습니다...그들이 추구하는 방식은 ‘오직 성경대로!’였습니다. 그들은 주변 눈치를 봐서 소신을 굽히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토마스 카트라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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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녹스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면, 그 완성은 앤드류 멜빌의 공로...멜빌은 녹스의 제 1치리서를 더욱 보완하여 제2치리서를 작성합니다...’두 왕국 이론’...이는 훗날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입헌군주제의 사상적 바탕이 되기도 하는 아주 중요한 이론입니다. 입헌군주제,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는 종교개혁의 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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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언약...그레이프라이어 교회당...3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명을 했고, 그 사본을 전국에 돌려서 전 국민의 60%가 서명...1638년도에 스코틀랜드가 거룩한 분노로 행동한 이 사건은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여기에는 국왕이 종교와 법과 신하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조건 하에 충성을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는데, 바꿔 말하면 이것은 국왕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정당성까지도 부여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12월 그래스고 총회 때는 공동기도서 불법이라는 결정과 함께, 주교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모든 비장로회적 요소를 제거하기로 합니다...찰스 1세가 제시했던 모든 조항을 폐지...그리고 장로교회를 국교로 삼습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장로교회 정치를 ‘하나님이 주신 제도’라고 선언한 것입니다...이 사건을 스코틀랜드 제2종교개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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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의회가 소집된 지 일주일 뒤...종교개혁자들이 내려왔습니다...분쟁의 핵심이 종교문제였으니, 평화의 핵심도 종교문제였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찰스 1세가 그 이상한 종교정책을 포기하는 것이었으며, 적어도 스코틀랜드에서만큼은 장로교회 정치제도가 보장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바란다면, 이웃나라 잉글랜드도 종교개혁의 흐름을 스코틀랜드 수준으로 따라왔으면 했던 겁니다. 그게 되려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동일한 교회정치와 예배형식을 가지면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제출한 <우리들의 요구>에는 전쟁보상금이니 뭐니 이런 따위가 아니라, ‘교회의 일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교회가 ‘하나의 신앙고백, 교리문답서, 예배모범서 그리고 동일한 형태의 교회조직’을 소유하자는 것이었습니다...바로, 수년 뒤에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저 목록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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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가 중요해!” 장로교회파 :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다수 세력은 장로교회에 속한 청교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잉글랜드의 지하교회 처지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토마스 카트라이트 시절의 초기 장로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세대가 바로 이들입니다...그래서 그들은, ‘세속 권력은 세속 정치에만 관여할 수 있고 교회는 온전히 교회가 알아서 다스려야 한다’는 앤드류 멜빌의 두 왕국 이론에 기초한 장로교회 정치 원리를 추구했습니다...또 장로교회는 그 특징이 ‘노회’에 있기에 여러 교회가 모인 노회를 ‘온전한 교회’로 봤습니다. 교회를 정의하는 기준이 달랐던 겁니다. 만약 노회에서 중요한 사항이 결정되면 소속된 교회는 따르는 것이 옳고, 노회에 속한 어떤 교회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노회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치리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바로 장로파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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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교회가 제일 중요하다구!” 독립파 : 교회의 최종 권위를 ‘개별 교회’에 두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장로파가 노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는 다르죠. 이들은 숫자는 적었지만 굉장한 실력을 갖추었고 열성적으로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솔직히, 잉글랜드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무엇이든지 교회 ‘위에’ 조직이나 세력이 되어 영향을 끼치려는 것은, 지긋지긋했을 것입니다...만약 노회가 타락해서, 자신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독립파는 그런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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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보호자는 국가!” 에라스투스파 : ‘국가 권력이 교회 정치에 영향력을 끼쳐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당시 성공회에 속한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이런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교회 위에 있다’는 것은 헨리 8세 이후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개념이었습니다...에라스투스파는 대부분의 안건에서 장로파를 지지했지만, 교회는 여전히 ‘합리적인 국가 권력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젊은 지식층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회의 활동으로 잉글랜드의 밝은 미래를 건설해 보겠다는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과 귀족 등 기존 세력의 힘을 제거하는 한편, 역시 기득권층에 속하던 교권도 제약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장로파와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총회를 독립적인 의결기관이 아니라 의회에 그저 ‘조언(Humble advice)’을 하는 분과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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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항상 있어야 하는 직분’, 이것을 <항존직>이라고 부릅니다...장로나 목사 안수 때 과도한 구별의식을 심어주면서, 이제는 평범한 신자(평신도)가 아닌, 어떤 ‘특수 계층’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도 결국 같은 문제입니다. 직분은 교회를 섬기는 ‘역할’을 위해 존재하고, 철저히 그 역할로 섬기는 것입니다. 직분자가 소중한 까닭은 그가 맡은 역할이 소중하기 때문이지, 그 자신이 어떤 성스러운 존재가 되는 게 아닙니다. 도구로서 소중히 쓰임 받을 뿐입니다...웨스트민스터 총회는 항존직에 크게 ‘장로’와 ‘집사’가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장로는 다시 세 가지 역할로 분화됩니다. 목사 - 교사 -장로, 이 세 직분이 모두 장로의 직분에서 분화됩니다. 모두 다 장로이지만, 주특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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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리장로는 말씀이 실제로 신자의 삶 속에 적용되도록 교회를 다스리는 역할을 맡은 직분입니다. 그렇게 되려면...말씀대로 살도록 신자들을 권해야 하고, 때로는 강하게 말해야 하고, 꾸중도 해야 합니다. 물론 그런 역할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이 누군들 쉽겠습니까? 하지만 성도의 성숙과 교회의 순수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운 역할을 누군가는 잘 감당해야 합니다...장로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심방’입니다. 심방을 통해 신자의 삶을 잘 ‘아는’ 상태가 되어야, 권면도 꾸중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에게는 심방이 필수 직무입니다. 심방을 하지 않는 장로는 장로로서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자기 역할을 잘하는 장로에게는 우리가 저절로 알아서 치리를 받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장로를 뽑을 때, 조금 과장하자면 ‘저 사람이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혹은 ‘저 사람이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따’ 싶을 정도의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 정도로 신뢰해서 기꺼이 다스림을 받을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직분의 타락이란 그렇게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역할이 없으니 당연히 권위도 떨어집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장로의 권면과 훈계를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누구세요? 저 아세요?”입니다. 심방을 하지 않는 장로는 다스릴 수 없습니다...장로는 또한 목사의 설교가 성경적인지 교리에 어긋남이 없는지를 살펴야 합니다...그래서 장로는 성경과 교리에 대한 신학적 지식이 상당해야 하며 목사의 설교를 가장 주의 깊게 들어야 하고, 신자들에게 알맞는 설교인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가장 적절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도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공식적으로 ‘당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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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도 장로인데, 그중에서도 가르치는 일에 특화된 장로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무조건 ‘잘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교회는 목사가 1주일 내내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가르칠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해결해드리는 것입니다. 잘 준비해서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설교를 준비해달라는 것이 교회가 목사에게 내리는 특명입니다...특히 종교개혁 시대부터 이어온 장로교회의 전통은 목사를 혼자 두지 않고, 여럿이 모여서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목사가 신학교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매주 다른 목사들과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설교를 연습하고 서로 평가해주고 보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이런 역할은 오늘날에도 노회(혹은 시찰회)가 어떤 형태로든 감당해줘야 할 소중한 종교개혁의 전통입니다. 오늘날 이런 모임이 노회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목사가 신학 세미나 혹은 좋은 특강이라도 자주 참석할 수 있도록 교회는 지원을 해야 합니다. 교육에 참석하거나 책을 사볼 돈이 없어서 설교가 엉망이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신자들의 몫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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