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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그분의 세계로부터 우리 세계를 향해 오류 없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성경 안에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식론적으로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우리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식의 확실성을 위한 유일한 기반을 버리기 때문이며 무한하시고 인격적이신 유일한 하나님과 그분으로 인해 존엄하고 가치 있는 인격체인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의미 있는 기초”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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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의 대화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의사소통 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무한하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언어적이고 명제적으로 문자상의 진리를 전달하실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더 그럴 듯한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면, 분명코 그분은 인간을 향해 자신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은 채로, 문자상의 비상징적인 진리를 말씀하실 수 있다. 사실 성경에 의하면 이것이야말로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언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에게 문자상의 진리를 말씀하셨다. 하나님꼐서 자신과의 교제를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외부로부터 그들 자신에게로 온 그분의 문자상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 진리를 잃어버리거나 왜곡시키지 않은 가운데 언어교환의 방법으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당하다(명백히, 이 능력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특성의 일면이다)...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최고 창조물이며 모든 인간의 능력이 신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고 가르친다. 특히 성경은 확실하게 단언하기를 인간의 언어는...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라고 말한다...모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나 여호와가 아니뇨?”(출4:11)라고 반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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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우리는 언어가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정확히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전달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순되는 해석들조차도 동시에 옳을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진리는 오직 명제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뿐이며, 명제들은 언어와 분리되어서는 형성될 수 없다...언어 자체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문자상의 진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명제적으로 전달되거나 계시될 수 없다는 생각을 인정하는 모든 이론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이 되신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는 널리 알려진 아람어와 헬라어를 사용하여 무리들을 가르치셨으며 그분께서 실제로 그렇게 하셨듯이 자신이 영원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고 주장하시기 때문이다(요8:24,40)...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이 그러한 계시의 전달자임을 주장하셨기 때문...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명제적인 또는 정보적인 계시를 그들 신앙의 초석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진리를 믿을 때만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의 타당성에 대하여 확실성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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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성경은 성경에 대해 유일하게 오류 없는 해석자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4항)...J.I.Packer...”더 나아가 성경에 있어서 2차적이고 모호하게 보이는 것은 1차적이고 명확하게 보이는 것에 비추어 연구되어야 한다...균형감각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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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성경이라는 주제를 제1장에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다룸으로써 신앙고백서 작성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민첩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종교에 있어서의 최우선 문제가 인식론적인 것, 다시 말해 권위의 문제라는 점을 예리하게 알고 있었다. 고백서 작성자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고백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당신들이 고백한 것이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소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이오”라고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교리보다도 앞서서 이러한 인식론적인 문제를 처음부터 다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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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무오성”(inerrancy)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의미하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위성”(infallibility)와 같다. 즉, 그것이 주장하는 바가 영적인 실재의 영역에 있는 것이든지 도덕의 영역에 있는 것이든지 또는 역사의 영역이든지 과학의 영역이든지 간에 그 어떤 주장에 있어서도 성경은 틀리지 않으며, 틀린 것을 가르칠 수 없다...다시 말해서 우리는 성경의 참과 거짓을 평가할 때에, 성경이 기록된 상황 즉 성경의 용법이나 목적과 동떨어진 기준들에 의해서 성경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부족한 현대의 기술적 정확성, 문법이나 철자에 있어서의 인식된 불규칙성, 자연에 대한 관찰적 묘사, 과장되거나 대략적인 숫자의 사용, 자료들을 주제별로 배열하는 것, 병행적인 설명에 있어 자료를 다르게 수집한 것, 자유로운 인용문의 사용 등과 같은 현상들이 성경의 무오성을 반대하기 위한 논거로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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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벌코프...”성령님의 증거는 죄인의 마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일 뿐이며, 그것에 의해 죄인은 죄에 대한 무지를 제거한다...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한 즉각적인 확신...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시는 증거...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해서 성령님의 증거는 믿음의 최종적인 근거라기보다는 오히려 믿음의 수단이다. 믿음의 최종적인 근거는 오직 성경뿐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의 증거 안에서 신자들을 감동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뿐이다. 믿음의 근거는 믿음의 내용과 일치하며 그것과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성령님의 증거는 믿음을 갖도록 감동시키는 원인이다. 우리가 성경을 믿는 것은 성령님의 증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의 증거를 통해서이다.” 벌코프와 마찬가지로 에드워드J.영 또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성령님의 증거는...오히려 그것은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초자연적인 사역의 측면으로 그 안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누이 열리며 그로 인해 한때 어둠 가운데 놓여 있었고 죄에 매여 있었던 우리들은 이제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마침내 이제 죄인들은 이 성경이 다른 어떤 책들과도 다르다는 사실을 확신한다....난생 처음으로 성경의 신성이 명확하게 인식...증명...그분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진실로 어둠으로부터 그들을 끌어내어 빛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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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제임스 패커 역시 성경 안에 그러한 역설들이 존재한다고 자신의 저서 [복음주의와 하나님의 주권]에서 주장하였는데 그는 “역설”보다는 “이율배반”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패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비록 그것이 그렇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여튼 신학에서의- 이율배반은 실재하는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개의 명백한 진리 사이에 있는 하나의 표면상의 양립불가능성이다. 한 쌍의 원리가 나란히 있을 때, 이율배반이 존재한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 양립불가능한 것 같지만 둘 다를 부인하기는 어렵다...(이율배반은) 설명할 수 없다...그렇다면 이율배반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를 배우라. 표면상의 모순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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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비극적이게도 위의 두 가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과 참된 이성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현대인은 진실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는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왜냐하면 첫째, 자신의 마음 중심에서 믿고 있는 것이 그 자신에 대한 참된 것이라는 즉 그가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옹호해 줄 유일한 기반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며, 둘째, 과학과 윤리에 있어서의 자신의 결정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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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프란시스 쉐퍼...쉐퍼가 사망했던 1984년 5월 15일 며칠 전...마지막 글...세계관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본적인 근거...”...계몽주의 이래로 지성은 우주의 구조에 있어서 기본적인 근거를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우주의 기본적인 구조를 비인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것은 우주 안에 종교도 지성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론 안에서 인격성 논쟁은 우주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도 다루지 않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윤리를 위한 자리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에 있어 어떤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위한 자리도 전혀 남지 않는다. 또한 이 이론의 문제는, (사물들에 대한 이러한 묘사가) 단순히 우리가 우주에 대해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인간 자신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다시 말해, 인간은 단순히 수학적인 사물-또는 공식-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에게 슬픔을 안겨줄지라도. 최악의 형태에 있어서 이것은 단순히 신비주의에 불과하며, 합리성을, 최종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오만한 자기중심주의...완전히 반대되는 입장-궁극적인 실재는 세상을 창조하셨던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는 입장-으로 되돌아가 그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우리를 지적인 해답의 자리로 되돌려 주며 갑자기 문을 열어준다. 그것은 단지 해답을 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 수 있고 숨쉴 수 있으며 기뻐할 수 있는 우주 안으로 우리를 다시 놓아준다. 만약 현대인이 정직하기만 한다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붕괴하고 있는 것은 나의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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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신학 분야인 “조직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학문분야라는 것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한다면, 조직신학은 성경을 하나의 완성된 계시로 보는 방법론적인 성경연구이며 이는 성경을 펼쳐진 계시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구약신학이나 신약신학 그리고 성경신학 등의 분야와는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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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신학적인 활동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그가 창조하신 세계에 대하여 성경 안에 계시하는 진리를 논리적이고 일관된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고자 애쓴다는 점에서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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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살아계시고 참되신 한 분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그분 자신을 계시하셨음에도 성경의 연구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으신다...반드시 신학에 참여해야 한다...요약하자면 교회의 제일의 관심사는 신학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이 옳은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정통적인가 아니면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 그것은 성경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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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학자는...진리로부터 벗어난 예전의 역사적인 이탈을 설명해야 할 뿐 아니라...참된 교리를 공격하는 모든 오늘날의 이단적 주장을 물리쳐야 한다. 조직신학의 과업과 관련하여...동의한다...오늘날의 이슈와 용어의 관점에서 교리들을 해석해야 하고...역사적이고 동시대적인 관점들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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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유오한 인간적 증언이며, 성령님께서는 성경이 아니라 “신앙”을 감동하심으로 “그리스도 사건”을 우리 안에서 실존적으로 다시 일으키시는 것이다. 실제로 “영감되는”것은 믿는 신자이다. 위의 주장은 전형적인 신정통주의의 교리적 선언이다...칸트적 구분의 영향...칸트는 주장하기를 현상적인 영역 즉 눈에 보이는 세계는 순수 이성의 통제를 받는 반면, 본체적인 영역은 하나님, 자유, 신앙의 영역으로 그것은 “실천”이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그에 따라서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마치 접선이 원과 접하는 것처럼 영원이 시간과 “접촉”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절대로 시간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이러한 반론에서는 성경을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결점 있는) 기록으로 보며 절대로 성경 자체를 계시로 보지 않는다. 계시는 언제나 일반적인 역사의 바깥에 있는 비언어적이고 직접적인 신의 현현이며, 종교적 진리는 언제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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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신정통주의가 종교적 지식에 대한 자신의 요구를 변호하고자 제기하는 인식론적 기반에는 “신앙의 도약”을 주장하는 신학이 갖고 있는 모든 변증적 약점들이 존재한다. 특히 모든 비언어적인 종교 경험에 있어 처음부터 존재하게 되는 철저한 주관주의와 비합리성이라는 약점이 있다. 종교적 인간 실존이 신정통주의의 인식론적 관점을 지지하게 된다면...어떻게 해서 그는 그것(비언어적이고 주관적인 종교적 만남)이 참된 것이고, 거짓된 것이 아니라고 알 수 있는가? 어떠한 근거로 그는 자신의 비언어적 종교 경험에 대한 ‘언어적’ 설명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또한 누군가 그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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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940, 1950년대의 급진적인 불트만주의는 신정통주의의 인식론을 자신들의 논리적 결론에까지 끌고 나가 신약 성경의 예수를 “비신화화”함으로써 예수에 관한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발견할 가능성을 부인하기에 이르렀는데, 사실상 이것은 신학을 하이데거주의자들의 실존주의 인류학으로 변형시킨 것이나 다름 없었다...그리스도는 실체가 없는 “환상”이고, 십자가는 단지 “상징”에 불과하며, 부활은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고 구원을 갈망하는 실제 역사에서가 아니라 “근원 역사”에서만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복음에는 어떠한 “내구력”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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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디모데후서3:16...최소한 바울에게 있어 “모든 성경”은 구약 성경을 의미했다...그러나 바울이 “모든 성경”이라는 전문적인 범주 안에 그 자신의 것을 포함한 신약 문서들을 기꺼이 포함했었을 것이며, 또한 실제로 거의 그렇게 했다는 정당한 근거가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을 썼을 때 바울의 지시와 다른 것을 하라는 성령의 승인을 받았다고 주잫아는 자들에게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40)라고 비꼬며 주장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자신이 사도로서 기록한 것드링 성령의 감독 아래서 된 것이라는 인식을 표현한다. 고린도전서 14:37에서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라고 썼을 때, 바울은 그에게 임한 성령님의 감독하시는 영향력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디모데전서 5:18에서 바울은 “성경에 일렀으되”라고 쓰는데, 그는 계속해서 신명기 25:4과 누가복음 10:7 둘 다를 인용한다. 이것은 바울이 누가복음을 신명기와 동등하게 영감된 “성경”으로 보았음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워필드는 그것이 후자-하나님께서 그 자신으로부터 ”성경을 불어 나오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결론지었으며 그의 결론은 일반적으로 학문적인 견해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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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워필드...”하나님 자신만이 백성들에게 자신의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도구들을 사용하신 장본인으로서 자신의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그 도구들을 적절하게 배치해 오신 분이시다...인간의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전해진 메시지가 말해지는 언어에 의해서 적어도 그 형태에 있어서는 조건이 형성된다는 것이다...그 언어를 통해서 그분은 메시지를 전달하시지만 그분은 그것을 완전하고 온전하게 통제하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언어의 격조의 개성과 발음 양상으로부터 메시지가 변질되지 않고 그 언어에 의해서 순전하게 말씀하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선지자들의 메시지에 찍힌 얼마간의 개성적인 표현들은 이런 메시지들이 인간의 언어로 말해진다는 일반적인 사실의 한 부분일 뿐이며, 그런 일반적인 사실이 그 메시지들의 순수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직접적인 교통이라는 것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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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서가 성경의 필요성에 대한 그 교리를 오늘날 널리 통용되는 다음의 두 선행 조건, 즉 첫째, 일반 계시의 불충분성과 둘째, 특별 계시의 중단이라는 선행조건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일이 중요하다...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지자와 방언하는 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누군가 믿는다면, 동일하게 그는 하나님께로부터의 말씀을 얻기 위해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오직 성경이라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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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아타나시우스는 유세비우스가 나누었던 수용된 책과 논박된 책 사이의 구분을 없앴으며...유세비우스의 정경 가운데 27권의 책의 목록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 이후로 교회의 정경은 사실상 결정되었고 4세기가 끝나가기 전에 제롬과 어거스틴의 지도 아래에서 교회는 그것의 만족에 관한 모든 정경적인 의문점을 해결하였다. 그에 따라 A.D.397년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는 “정경인” 책을 제외한 어떠한 것도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읽혀져서는 안 된다고 요청하였고 그때에 오늘날 수집된 27권의 신약 책들을 신약 정경으로 확증하였다...요약하면 신약 정경에 관한 그러한 점으로부터 “문학적이고,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논거”가 있었다...어떤 점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신약 성경의 구체적인 목록을 주시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섭리적인 인도하심 아래에서 교회가 책의 수와 “목록”을 올바르게 입수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결괒거으로 이 “사도적 전승”은 이러한 오류 없는 기초와 증언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교회의 정신 안에서 그것 자체를 인증하고 확정하였던 것...1,600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정경의 종결을 지지하는 강력한 정황적인 논거...요약하자면 27권의 신약 정경의 형성은 인간이나 심지어는 교회가 한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이 홀로 일하셨던 사역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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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이처럼 구약 성경과 더불어서 신약 성경책들은 새 언약 공동체를 형성하고 체계화하며 그 공동체의 신앙과 삶을 명령하는 “조약 문서”로서의 기능을 처음부터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교회 안에 존재했던 조약-정경으로서의 신약 성경이 교회를 형성했지 교회가 신약 성경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이는 교회가 정경을 형성하고 결정했다는 로마 가톨릭의 주장에 반대하였던 종교개혁의 인식을 확증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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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성경 말씀을 듣고 성경에 무오성을 돌리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진리이자 성경 무오성의 원천인 그분께 무오성을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해 갖게 되는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지식의 원천은 성경이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성경 어느 곳에 오류가 있다면...성경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일은 진실로 위험한 것이 되는데...우리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의 그리스도와 성경 자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도록 유지시키는 것이며, 성경이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요14:6)에 의해 영감되었기 때문에 참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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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성경은 그것의 권위의 문제와 관련하여서 이 세상의 어떠한 변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경의 권위는 본질적이며 처음부터 타고난, 즉 스스로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의 권위는 결코 인간적인 증언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았다...”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나를 감동시키지 않았다면 나는 복음서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어거스틴의 유감스러운 언급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기독교강요] 1권 7장 3절에서 칼빈이 어거스틴의 논평에 대하여 설명하는 부분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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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성경들이 저자의 원래 의도를 갖고 있는 한 동일한 정도로 이러한 번역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권위를 갖고 있다고 단언하는 데 있어 우리는 조금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물론 원본의 권위가 본래적이고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인 반면 번역본들의 권위는 파생된 것이다. 번역본들이 영감된 원본을 복사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들을 “영감된 성경”이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오직 원본만이 직접적으로 영감되었고 그로 인해 무오하다. 원본에 대한 사본과 번역본들은 직접적으로 영감되지는 않았기에 다양한 종류의 오류를 갖고 있을 수 있다. 본문비평이라는 분야는 하나의 복사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본문을 옮기는 가운데 필사자들의 비의도적인 실수나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한 필사자들의 의도적인 노력으로 인해 이문(variant readings)이 발생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오한 원본과 오류 있는 사본을 구분하는 복음주의자들의 시도가 편향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오류가 있는 사본들이며, 사본에 있는 오류들이 맨 처음 원본에도 존재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하지만 신학적인 이유로 인해 사본의 단계에 나타난 모든 본문상의 오류들이 원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진리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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