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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

저자
박영선
출판사
새순출판사
출판연도
1992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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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종교
분야(소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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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추적에 의하면 요셉이 갇혔던 당시의 애굽에 있는 감옥들은 지하토굴이었다고 밝혀지고 있습니다...’벤허’라는 영화...일년 내내 햇빛 한 번 안 들어 오는 곳에...음식만 넣어주는 것으로 끝인 곳...요셉은 그런 곳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방마다 차단되어 있으며 그는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이겨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는 훨씬 울부짖고 아우성을 쳤을 것입니다. 그 힌트가 있습니다. 시편 105:18을 보십시오. “그 발이 차꼬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이 성구에서 ‘몸’...히브리 원어로 ‘혼’이라는 뜻입니다. 곧 ‘몸’이 쇠사슬에 매어 있는 게 아니라 그의 ‘혼’이 쇠사슬에 매인 것입니다...직역을 한다면 “쇠사슬이 혼을 꿰뚫었다”입니다. 소는 코만 꿰어 놔도 꼼짝을 못합니다. 어린아이에게도 끌려갑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손에 끌려가는가 하면 고삐를 ‘혼에다 맨다’라고 성서는 진술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훈련하시는가 하면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서 할 수 없이 훈련받게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냥 순순히 받지 않습니다. 도장 가게에 가서 도장 파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도장 파기 위해서 맨 처음 하는 일은 파야할 도장을 가장 확실하게 묶어 놓는 일입니다. 조각칼로 조각을 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되어야 하나님 앞에서 훈련을 받는가 하면 더 이상 꼼짝달싹할 수 없는 곳에 몰려야만 훈련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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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시지 왜 꼭 아프게 해야 되고, 아픈 일이 벌어진 후에 울면서 돌아오게 하십니까?’...이 부분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될 것은 하나님이 인간(우리를)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능력’이고 ‘수준’입니다. 사랑이란 정열도 아니고 욕심도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높습니다...그 수준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나도 사랑을 받아내겠다는 수준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굴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굴복을 요구하는 것은 강도나 하는 일입니다. 권총을 꺼내놓고, “나랑 결혼하면 권총을 거둘 것이고 안 하면 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강도라고 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위협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인격적 수준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나를 사랑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구약의 율법과 형벌의 차원에서 우리를 이쪽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닙니다. 가시철망을 쳐서 오직 한 길만을 뚫어놓고 이길 이외의 길을 가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열어놓고 가고 싶은 데로 다 가게 해놓고 싸우는 ‘사랑의 자존심’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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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들이 있는데 저 아래에 사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고 와서 함께 놀았습니다. 놀다가 텔레비전을 망가뜨렸습니다. 누가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아래 집에 사는 애가 망가뜨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 어디 사니?” “저 아래 살아요” “그래? 같이 가 보자.” 손잡고 가서 그 아이의 부모에게, “수선비 40만원 되겠습니다.”그럴 것입니다. 왜 남의 집 아이에게 야단치고 그러겠습니까? 그런데 내 아들이 깼으면 “이 T.V. ‘40만원’이란다.” 이렇게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저 방구석에서 손들고 5일 동안 서 있어.” 그런데 자녀입장에서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손들고 서 있으면서 한 사흘쯤 지나면, “이 사람이 정말 내 아버지 맞아? 옆집 애가 깼다고 하니까 다정스럽게 웃으면서 ‘얘, 너희 집이 어디니?’ 하더니 내가 깼다니까 인상을 있는 데로 쓰면서 닷새 동안 벌 서 있으래!” 이것이 우리가 겪는 신앙의 가장 큰 혼돈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데 ‘왜 나에게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점입니다...저 쪽은 끝나면 몽땅 한꺼번에 받습니다. 그러니까 놔두는 것입니다...게거품을 내뿜든지, 물구나무를 서든지...여기는 내 아들입니다...고칠 때까지 채찍질을 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얼마나 고집이 센가하면 그의 별명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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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우리의 기준은 옳고 그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성서에 거짓말이 두 번 나오는데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 애굽 전역의 산파들...”산모들이 모두 건강해서 아기를 받으려고 달려가 보면 이미 다 낳아 놓았으니 어떻게 합니까?” 산파들이 다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이 거짓말을 한 산파들을 하나님께서 참으로 칭찬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리고성에 살던 라합입니다. 여호수아가 파견한 스파이(정탐꾼) 둘을 감춰 놓고...라합이 구원을 얻었고,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됩니다. 대단한 축복입니다...거짓말이란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 반대 편에 서는 것입니다. 사탄을 가리켜서 그는 처음 거짓말을 한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 반대편에 서는 것이 거짓입니다. 사실을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만이 거짓이 아닙니다...”아버님은 아직도 50년은 더 사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효도라고 그러지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는 너무나 법조문적으로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를 따지는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끊임업싱 물어야 합니다...사랑한다는 말은 ‘옳은가, 틀린가?’라는 것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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